장미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꽃인데, 그것이 군락을 이루고 독특한 위치에 있을 때 특별한 존재가 된다. 오늘 소개할 이촌한강공원의 장미길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알 만한 곳이지만 지난해에 비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올해 가장 아름다운 색깔을 자랑한다. 이날 오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비가 와도 촬영해 보겠다는 의지가 통했는지 오후에는 기적처럼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 뜻이 있으면 길이 열리고, 의지가 있으면 반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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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시절 당시 여자친구와 함께 이촌동에 있는 온누리교회를 다녔다. 예나 지금이나 나일론 신자이긴 하지만 그녀 앞에서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이촌동은 참으로 애매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에 가기가 귀찮아졌다. 당시 이촌동은 지하철이 있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그냥 주택가 모습이었지만 교외의 아파트 단지 모습과 큰 차이는 없고 갑자기 낡은 재래시장이 있는 그저 그런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촌동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조용하고 외국인이 잘 보이는 조용한 아파트 단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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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공원도 지역에 따라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치맥과 캠핑족, 라이더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촌 한강공원은 확실히 다르다. 텐트 자체가 금지된 탓에 다른 지역처럼 무질서하거나 쓰레기가 난무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야말로 교과서에 나올 만한 건전한 사람들이 모여 있고, 흔한 편의점도 없다.원래는 있었지만 폐쇄되었다. 결국 장소의 첫인상을 지배하는 것은 그곳의 풍경뿐 아니라 그곳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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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랜드나 중랑천 같은 거대한 장미를 기대한다면 이촌한강공원의 장미길은 매우 작고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차범근(차·봄궁)축구 교실 뒤편에 있는 오솔길, 그리고 자신만이 알고 싶은 은밀한 공간, 오후 6시 이후의 찬란한 빛을 기대한다면 여기가 최고의 장소이다. 무엇보다 한강 야유회를 와서 장미를 구경할 생각이라면 부담도 없지 않은가. 어느 한강공원보다 이곳을 최고의 장소로 추천하는 이유는 거듭 밝히지만 깨끗한 환경과 한적한 분위기 때문이다. 가끔은 한국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외국인이 많아서 그런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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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어느 장소에 가든 중요한 것은 촬영 타이밍이다. 정직한 빛의 정오 시간대보다 극적인 분위기의 일출/일몰 장면이 더 아름다운 이유다. 이촌한강공원의 핑크장미길은 오후 5시 30분부터 길 사이에 역광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길 자체가 좁아 더욱 강하고 아름답다. 이런 모습은 흔한 골목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골목길이 좁을수록 빛이 강해져 방향성이 명확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애매한 시간에 이곳을 찾기보다 오후 5시 이후 해가 충분히 떨어지기 시작하는 타이밍을 노릴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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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이촌 한강공원의 풍경은 에너지를 준다. 넓은 잔디밭과 예쁜 나무들, 그리고 시원한 바람까지 5월의 한강은 고난의 시대에 치유되었다. 아쉽게도 이미 꽃잎이 떨어져 주말을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폭우나 바람이 불지 않으면 다음 주 중반까지는 꽃이 남아 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5월 이촌한강공원 핑크장미길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함께 걸어 걸어준 윤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포스팅한다.